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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계선 인격장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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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스터디(rroye@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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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5월 09일 17: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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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선 인격장애에 관한 상담 스터디 - 영화 ‘사도’(아카시아님)
영화 ‘사도’는 관 뚜껑을 열고 나온 사도세자가 쏟아지는 빗속을 큰 칼을 들고 궁으로 거칠게 걸어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장엄하고 긴장을 불러일으키는 음악은 다음에 일어날 비극적인 일을 예상케 한다. 관에 들어가 하루를 보내거나 수십 벌의 옷을 갈아입으며 불편을 토로하고 심지어는 시중들던 내인을 죽이면서 천둥 번개에 공포로 일관하는 사도세자의 모습은 이미 그가 사회문화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쉽지 않은 행동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영조의 늦둥이 아들로 태어나 기대와 관심을 한몸에 받았던 세자는 어떻게 해서 그런 광기 어린 모습으로 변모하게 되었을까? 사도세자는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왕세자, 당쟁의 희생 그리고 아들과도 나눌 수 없는 것이 정치 권력이라는 등의 이야기로 널리 회자 되는 인물이다.
정신분석적으로도 영조, 정조와 함께 다루어지는 여러연구들이 있다. 나는 사도세자의 문제행동을 살펴봄으로써 경계선 성격장애의 특징과 발달배경에 대해 알아보려고 한다. 성격장애는 개인의 고유한 특질이 그 자신이 속한 사회문화적인 기대에서 벗어나 있고, 이 특질이 경직되어 아무 상황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며 그것 때문에 사회, 직업적으로 심각한 기능장애를 야기하는 것을 보여준다. 즉 인지, 정서, 대인관계 기능성 및 충동 통제성의 측면에서 부적절한 행동패턴으로 내적경험을 지속적으로 드러낸다. DSM에서는 9가지의 성격장애를 그 발달적 측면에서 분류하고 있는데, 이들 가운데 경계선 성격장애는 자아상, 대인관계, 정서가 불안정하고 충동적이라는 특징을 보여준다. 정서가 상당히 불안정하여 정상으로부터 우울과 분노의 에피소드를 자주 오가는 모습을 강하게 보인다.
경계선 성격장애라고 말할 때 경계선의 의미는 신경증과 정신증의 경계선이라든가 성격조직으로서의 경계선을 의미하기도 하고, 때로는 치료하기 어려운 환자에 대한 명칭으로서 경계선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했지만 정확하게는 DSM의 진단기준에 들어맞는 증상을 가진 사람들에게만 사용할 수 있는 용어라고 할 수 있다. 진단기준으로 보면 인간관계, 자기상 및 정서의 불안정성과 현저한 충동성의 지속적인 패턴이 초기 성인기부터 발현되고, 다음에 제시되는 것들 (1)실제 혹은 상징적인 유기를 피하려는 적극적인 노력, (2)이상화와 평가절하의 양극단을 오가는 것으로 특징지어지는 불안정하고 강렬한 인간관계 패턴, (3)자기상 혹은 자기에 대한 감각이 현저하고 지속적으로 불안정한, 즉 정체성 장애, (4)잠재적으로 자기 손상적 성질을 지니는 최소한 2가지 영역에서의 충동성(예:소비, 성, 약물남용, 부주의한 운전, 폭식), (5)되풀이되는 자살행동이나 제스처 혹은 위협 또는 자해행동, (6)기분의 현저한 반응성에 기인하는 정서적 불안정성(예:며칠마다 간헐적으로 나타나 몇시간 동안 지속되는 강한 기분저조나 초조 또는 불안 에피소드), (7)만성적인 공허감, (8)부정적이고 강렬한 분노 혹은 분노통제의 어려움(예:빈번한 분노폭발, 지속적 분노상태, 되풀이되는 몸싸움), (9)스트레스와 관련된 편집증적 사고 혹은 심각한 해리 증상- 중 5가지 이상이 다양한 맥락에서 나타나는 경우이다.
경계선 인격의 사람들은 정서적 불안정성이 높고, 자기상 또한 불확실한 특징을 보인다. 자신에 대한 느낌이나 생각이 파편처럼 뿔뿔이 흩어져 잘 통합되질 않는다. 따라서 자기 존중감이 매우 낮고, 자신을 잘 믿을 수가 없어 혹시 실수나 잘못을 저질러 사람들에게 멸시당하면 어쩌나 몹시 걱정한다. 이는 버림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연결되고 다시 과도한 정서적 불안정성을 활성화시킨다. 양육자에게 존중이나 조건 없는 사랑을 확실하게 받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다. 부정적이고 비일관적인 부모의 양육방식뿐만 아니라 때로는 신체적 혹은 성적인 학대의 결과이기도 하고, 동시에 방임의 결과이기도 하다. 본질적인 특성은 학대받는 아동에 대한 철저한 무시와 유린이라는 점이고, 마땅히 받아야 할 사랑과 존중을 받지 못한 아동의 외상적 상처라는 점이다.
학대받은 아동은 학대를 가한 사람을 향한 분노와 적개심을 마음속 깊이 쌓아두게 되는데 이는 다른 중립적인 대상에게까지 확산되어 타인에 대한 불신과 경계심은 더욱 커지게 된다. 직접적인 폭력과 사회 정서적인 학대 그리고 방임의 피해자로 부정적인 자아상을 형성하고 타인에 대한 불신을 키우게 되는 것이다. 또한 가장 가까운 주양육자의 학대를 벗어날 수 없다는 무력감을 느끼게 되는데 이때 아동은 자기가치감에 상처를 입고 자율성과 독립심에 손상을 입는다. 또한 학대의 되풀이에 대한 극심한 불안과 공포감을 가지게 되고, 실제로 학대가 되풀이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상상 속에서 끔찍한 경험으로 살아남아 항상 심리적인 재체험의 대상이 되는 외상적 사건으로 자리잡게 된다. 이렇게 쌓인 무력감은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 되면 발작적으로 표현되기도 하는데(열등감의 표현), 힘세고 폭력적인 어른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경험이 활성화되어서 그러하다. (감정의 폭발, 폭언이나 폭력)
사도는 영조가 첫째 아들을 잃고 41세가 되어서야 얻은 귀한 아들이었다. 비록 정비와의 사이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3세에 세자로 책봉하고 세자교육을 시작할 만큼 영조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또 그에 부응하듯이 세자 또한 영특함을 보여 영조도 크게 기뻐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천한 무수리의 아들로 태어나 정통 세자교육도 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이복형인 경종을 죽이고 왕이 되었다는 의심에서 자유로울수 없었던 영조는 사도세자의 교육에 과도하게 몰두하여 자신이 완벽하다고 만들어 놓은 이상에 맞는 세자로 만들기 위해 그를 혹독하게 다루었다. 또한 형을 죽이지 않았다는 결백을 보여주기 위해 생후 100일의 사도를 경종의 정비와 그 나인들에게 보내 키워지도록 하였다. 결국 자신을 원수로 생각하는 무리들 안으로 자신의 아들을 밀어넣었다고 할 수 있다. 사도세자는 어머니와 분리된 채 정치적으로 반대편에 섰던, 자신의 아버지를 원망하고 미워하는 사람들에 둘러쌓여 성장하게 되었던 것이다.
어린 시절 영조와 어머니 영빈 이씨는 사도세자를 자주 보러 갔다고는 하지만 어머니와 너무 이른 분리를 경험했을 뿐 아니라 어머니 역시 헌신적이고 건강한 모습은 아니었던 것 같다. 영빈 이씨의 경우, 성정이 엄격하고 예법을 강조하였으며 세자를 모시던 나인들이 자신을 무시한다는 이유로 동궁전에 점차 발길을 끊었다는 기록, 사도세자가 어머니를 두려워하여 아주 조심하였다는 한중록의 기록으로 미루어 어머니와의 안정적인 애착에 문제가 있었으리라고 예상된다. 어디에도 아들의 잘못된 행동을 꾸짖거나 바로잡기 위해 애썼다는 기록을 찾아볼 수 없고, 혹은 아버지의 질책과 비난에 대해 어떤 보호적인 행동을 했다는 기록도 찾아볼 수 없다고 하며, 끝내는 종묘사직을 위하여 아들을 죽이라는 고변을 행했던 행위로 미루어 볼 때 어머니와의 대상관계 경험이 얼마나 빈약했을지 상상해볼 수 있다. 사도세자는 과연 자신의 의존 욕구를 성공적으로 충족시켜본 경험이 있었을까하는 안타까움이 든다. 기질적으로 아버지 영조와는 달리 무인의 기질을 가지고 있었던 사도는 학문적으로 완벽한 성리학적 군주가 되기를 바랬던 영조로부터 끊임없는 질책과 무시를 경험하였다. 소식과 채식위주의 식사습관을 가지고 있던 영조는 고기를 좋아하고 식사량이 많았던 세자의 모습조차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에 ‘식탐을 억제하지 못해 뚱뚱함이 심해지고 뚱뚱해서 얼굴 생김새가 답답하다’는 인신공격적 비난도 서슴치 않았다고 한다. 아들과의 대화에서는 이중속박 혹은 이중메시지를 주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영조는 자신이 경종을 죽일 만큼 권력에 욕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양위소동을 여러 번 일으키는데 그때마다 사도는 석고대죄하면서 어명을 거두어주실 것을 간청하는 일을 반복하였다. 진심도 아닌 아버지의 말에 아들은 자신의 잘못도 아닌 일에 잘못을 고하는 일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면서 과연 사도는 어떻게 해야 아버지의 눈 밖에나지 않을지 알 수 없었고, 어떻게 해도 아버지의 화를 누그러뜨릴 수 없다는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경험은 사도세자가 세자교육을 받기 시작한 3세 이후 여러 번 되풀이 되는데, 더욱이 영조의 모진 비난과 질책은 5, 6세 경부터 심해지기 시작하여 10세 경이 되었을 때는 이미 사도세자는 아버지 영조에 대한 두려움으로 벌벌 떨었다고 한다. 이후 15세부터 대리청정이 시작되었는데, 때로는 중요한 결정을 묻지 않고 결정했다고 비난당하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물으면 그것도 혼자 처리하지 못하냐고 비난당하였다.
또한 영조는 자식들 간의 편애가 심했는데 자신이 사랑하는 옹주와 같이 있는 사도세자를 보고 화를 내는 일이 생기자 너무 두려운 나머지 사도세자가 창문으로 뛰어내려 도망쳤다는 일화도 전해질 만큼 사도세자는 아버지로부터 미움과 무시를 당했다. 영조는 무수리의 아들이라는 미천한 출신으로 왕세자로서의 교육을 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왕이 되기까지 정적들로부터 지속적으로 생명의 위험을 받았고 아버지의 존재를 경험해 보지 못한 채 사가에서 자라며 자신의 안전을 위해 숨죽이고 살아야만 했던 자기의 처지와 비교해 보면, 자신과 달리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환영받는 세자에 대한 무의식적인 시기심이 컸던 것 같다. 시기심은 유아기 박탈로 인한 탐욕과 연결되는 내재된 공격성의 표현인데 다른 사람이 갖고 싶고 무언가를 소유하고 즐기는 것에 대해 분노하는 감정이다. 시기심의 충동은 그것을 빼앗고 손상입히고자 하는 죽음의 욕동이기도 하다. 또한 시기를 받는다는 것은 그 자신이 완전히 말살되고 자신의 정체성, 감정에 관한 모든 것의 가치가 인정되지 않는 현실을 경험하는 것이다. 아버지의 이런 무의식적 시기심으로 사도세자의 자아는 더 위축되고 분열되었을 것은 당연해 보인다.
대상관계이론에서 보면, 생애 초기 중요한 대상과 맺은 관계의 기억흔적, 즉 정신적 표상은 개인의 무의식에 남아 있으면서 의식적인 인간관계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그렇다면 어머니가 아닌 정치적으로 반대파의 사람들로부터의 양육이 부족했고, 거리있는 차가운 어머니, 좌절시키는 아버지를 경험한 사도세자의 대상관계 모습은 과연 어떨까? 경계선 성격의 사람들의 대상관계는 자신을 지지해 주는 사람이 있을 경우 주로 나타내는 증상은 우울과 고독이다. 지지적인 대상과 좀 더 친밀한 애착관계를 형성하기를 원하지만 수동적인 태도로 일관하는데, 그것은 상대방에게 더 많은 것을 원하거나 때로는 화를 내게 된다면 대상이 자신을 버리고 멀리 떠날 것이라는 유기불안이 생기기때문이다. 대상에 대해 뭔가를 더 원하는 소망과 유기불안 사이의 팽팽한 긴장 때문에 이들은 우울과 무기력을 경험하게 된다.
또한 자신을 좌절시키는 대상이 있는 경우 주로 경험하는 것은 분노와 적대감으로 대상상실에 대한 공포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중요한 대상이 존재하지 않거나 부족한 경우에는 정신증적 상태, 공황상태 또는 공황상태를 피하기 위한 충동적인 행동이 나타난다. 혼자 남겨지는 것에 대한 방어적 노력이며 중독이나 공상적인 관계에 빠져들기도 한다. 사도세자는 좌절시키는 강렬한 아버지 경험으로 강력한 분노와 복수심을 갖게 되지만 아버지를 향한 분노를 표출했다가는 역모로 몰릴 수밖에 없었던 유교사회의 강력한 규범에 따라 공격성을 억압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사도는 강력하고 탁월한 아버지처럼 되고 싶은 욕망과 자신을 미워하고 처벌하는 아버지를 제거하고자 하는 두 강렬한 충동들 사이에서 끝없이 갈등하고 있었던 것 같다. 무덤을 만들고 그 안에 들어가 꼼짝도 안하고 누워 시간을 보냈던 사도세자의 모습은 자신을 증오하는 아버지의 무덤을 만든 것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아버지가 죽었으면 하는 자신의 무의식적 소망에 대해 자신을 처벌하고자 하는 분열된 충동들의 상징이지 않았을까. 게다가 어머니를 비롯해서 자신의 부인, 안전한 정치적 후견인이 될 수 있었던 장인까지 그의 주위에는 지지적인 대상인 어른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고 분노폭발 이후 충동적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등의 경계선 성격의 모습들을 보였던 것 같다. 사도세자는 사는 것이 버겁고, 자신을 사랑할 수 없어서 언어와 행위로 죽음에 대한 염원이 쉴새 없이 나왔던 것이다.
컨버그는 분열의 문제를 경계선 성격장애의 핵심문제로 보았다. 분열이란 자기 혹은 대상의 좋은 측면과 나쁜 측면을 통합하는 데 실패한 것을 의미하는데 사도세자가 보여준 자기에 대한 이미지와 인간관계상의 불안정성은 대상관계를 발달시키는 과정에서 경험하는 분열상태로 보인다. 즉, 경계선 성격장애와 같은 정신병리의 원인은 유아기 생의 초기에 부모와 맺은 인간관계가 결핍되거나 왜곡되었기 때문일 수 있다. 컨버그는 생애 초기의 인간관계 경험을 내면화하는 과정을 경험의 내사, 확인 그리고 자아 정체의 3가지 단계로 구분하였다. 내사단계는 가장 초기의 내면화 과정으로 유아의 원시적인 지각과 기억으로 이루어진다. 내사란 주로 어머니로 대표되는 외적 환경과의 상호작용과 관련된 기억흔적을 의미한다. 자신과 어머니에 대한 단순한 감정적 기억으로 좋은 기억과 나쁜 기억을 함께 포함하는 정서의 기억이다. 이때 유아는 아직 긍정적인 내사와 부정적인 내사를 통합하는 능력을 발달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긍정적 내사는 긍정적인 것끼리 부정적인 내사는 부정적인 것끼리 분리시켜 내면화한다. 이것을 원시적 분열이라 하는데 만약 부모 또는 다른 환경적인 요소가 지속적으로 심각하게 아동의 욕구를 좌절시키면 원시적 분열이 병리적으로 고착되어 이후의 발달 단계로 진행될 수 없고 경계선 성격장애와 같은 만성적인 정신병리를 초래할 수 있다고 보았다.
분열된 어지러운 양극단의 모습은 기분과 대인관계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사소한 일로 상처를 받는 순간 기분이 최고에서 최저로 떨어진다. 우울해지거나 불쾌해지면 모든 것이 무의미해지고 자기가 살 가치가 없는 존재로 느껴져, 절망감이나 심한 자기혐오로 인해 자기를 파괴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이러한 우울 상태가 지속적이지 않고 간헐적이라는 게 경계성 성격장애의 특징이다. (하지만 마냥 침체되어있지 않다.)
유아는 어느 시기 자기와 타인의 이미지를 서로 다른 것으로 변별하는 일을 더 잘 해낼 수 있게 되는데 변별 능력이 생김에 따라 대상에 대한 정서적인 경험과 표상은 더욱 분화된다. 원시적 분열 경향성이 감소하고 더 복잡하고 분화된 정서를 경험하면서 세분화 된 자기표상과 대상표상이 가능해진다. 자아정체 단계에 이르면 자아능력의 발달로 긍정적인 표상과 부정적인 표상이 통합되어 다양한 가치와 기능을 지닌 자기표상과 대상표상을 형성한다. 컨버그는 일단 자아정체가 형성되기만 하면 경계선 성격장애와 같은 심한 성격장애는 피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런데 자기와 타인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와 긍정적인 이미지가 제대로 통합되기 위해서는 긍정적인 요소가 부정적인 요소보다 더 우세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있다.
그래야 스트레스 상황이나 좌절의 상황에서 긍정적인 감정을 고양할 수 있는 이미지를 불어올 수 있고, 이런 안정적인 이미지로부터 인내심을 가지고 적극적인 문제해결이 가능하며 그것은 바로 적응이라는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경계선 성격의 사람들은 원시적 분열에 고착되어 있어 긍정적인 기억과 부정적인 기억을 통합해낼 수가 없다. 자기의 좋은 측면과 나쁜 측면이 번갈아 가며 자신을 지배하게 함으로써 자기상을 매우 불안정하게 만들고 타인에 대한 대상표상도 그러하다. 긍적적인 표상이 활성화되면 대상을 이상화했다가도 부정적인 표상이 활성화되는 순간 분노와 적개심을 분출하는 아주 불안정한 대인관계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또한 경계선 성격의 사람들은 본능만족을 지연시키는 다양한 능력이 부족하고, 자기행동의 장기적인 결과를 예측해서 충동을 조절하는 능력이 결여되어있다. 이것은 현실 회피나 중독 등의 문제를 야기하기도 한다. 이는 불안과 공허감을 없애기위한 행위이이기도 하다. 다룰 수 없는 불안과 고통을 방어하기 위해 사도세자는 무덤을 만들어 그 안에서만 가능한 전능하며 망상적인 힘으로 자신을 통제하고자 하였고 죽기 직전까지 <서유기>와 같은 환상적인 소설에 빠져 정신적인 위안을 얻으며 자신만의 환상 속으로 철수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긴장과 우울이 한계 수위를 넘으면 서서히 통제력을 잃어가기 시작했고 간혹 기인한 생각과 정신증적인 행동이 돌발적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납득할 수 없는 감정의 표출이 나타나기도 했다.
무절제한 행동-성적인 문란함, 죽어버리겠다는 위협, 자살시도, 주위 사람들을 격렬하게 공격하거나 그들에게 분노를 표출하는 등-이 나타났다. 이러한 행동들은 폭발하듯이 발작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뚜렷이 구분되어 마치 전혀 다른 사람인 것 같았다고 한중록에 기록되어 있다. 사람은 많은 사람과 부대끼며 살 수밖에 없는데, 인간에 대한 거부반응을 갖게 되면 여러 가지 곤란한 사건을 겪게 된다. 경계선 인격은 상대와 가까워지면 점차 비난, 공격, 험담, 고집, 괴롭힘, 말싸움과 폭력이 일어난다. 사소한 일을 계기로 애정을 느꼈던 존재에게 용서할 수 없을 만큼의 분노를 느끼곤 하는 것이다. 일단 대상에 대한 거부감이 밖으로 나오면 접촉할 때마다 경멸이 가득차고, 혐오감이 솟구쳐 마음이 어지러워진다. 그래서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것보다 무덤에서처럼 혼자 있는 편이 마음 편안한 게 된다. 아무리 주변 상대를 바꿔도 혐오의 거부반응은 사라지지 않는다. 누군가와 가까워지면 신뢰감이 생겨나는 게 아니라 기분이나 관계가 불안정해진다. 타인으로부터 안도감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언제나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이기 쉽다. 분노나 공격성을 건전하게 해소하지 못하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가 악화 된다.
또한 경계선 성격의 사람들에게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성적인 문란함은 사도세자의 일대기에서도 드물지 않게 나타난다. 궁으로 기생뿐만 아니라 비구니까지도 불러들여 성 대상으로 삼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고, 궁의 궁녀들도 충동적으로 겁탈을 한다거나 거부하는 궁녀를 피를 흘릴 때까지 때리며 취했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사디즘적인 면모까지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되풀이되는 자살행동이나 제스처 혹은 자해행동 또한 경계선 성격장애를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 중 하나라는 점에서 사도세자의 경계선적 성격을 확인할 수 있다. 사도세자는 21세 처음 자살시도를 한 이후 여러 차례 자살시도를 반복했다. 실제로 자살하겠다고 우물에 뛰어들었는데 추운 겨울 우물이 얼어있어 살아났다는 기록이있다. 피해망상은 자신의 불안이나 공포, 불행감을 주변 사람들에게 투사한 산물이다. 마음이 미성숙한 상태에서는 사랑의 본능도 죽음의 본능 못지않게 감당하기 어렵게 된다. 사랑의 본능 때문에 스스로를 해치는 경우는 경계선자에게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증오는 선천적인 파괴 본능이 아닌 좌절한 사랑인 것이다.
사도세자를 통하여 경계선 성격장애를 공부하면서 생애 초기 대상관계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확인해볼 수 있었다. 아버지로부터의 정서적인 학대와 무시, 경멸의 경험, 이른 모성 분리에 따른 상실 경험, 차갑고 엄격한 어머니로부터 제대로 돌봄 받지 못한 경험 등을 통하여 어린 사도세자는 한 개인이 다룰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스트레스로 외상적인 사건들을 경험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런 외상적 사건들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무력감을 느낀 사도세자가 극심한 공포와 불안을 가지고 자기 존중감과 독립심에 손상을 입었을 것은 분명하다. 조선의 역사상 이처럼 많은 살인을 한 왕이나 왕세자는 없다는 점에서 그의 행동만으로는 그에 대한 동정심에 논란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의 증상의 원인과 발달배경을 이해해 보면 사도세자가 가해자임과 동시에 피해자일 수 밖에 없었다는 점을 가슴 아프게 확인할 수있다.
잘되지 않는 건 전부 상대방 탓으로 돌리고, 자신을 돌아보지도 상대방의 기분을 생각하지도 않기 때문에 공격성을 조절하지 못한 영조의 모습은 자기애적 성향으로 보인다. 자신의 잘못을 받아들이는 불쾌감을 느껴 오히려 고압적으로 상대방을 공격해서 우위에 서는 것으로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다.(조적방어) 전폭적으로 신뢰하는 존재와의 사이에 형성된 애착은 인간관계의 토대이자 타인과 친밀하고 원만한 관계를 맺는데 평생 도움을 주지만, 과도한 증오야말로 사랑받지 못한 것에 대한 증오이다. 트라우마가 생긴 사람은 과각성으로 고생을 하는데, 어떤 인물에게 불쾌감을 느끼면 몸과 마음이 경직되고 믿음을 잃는다. 혐오감으로 상대방의 결점을 못 견디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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