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가족 간에 동료 간에 '대화'를 못해 관계가 멀어지거나 깨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 경험을 하고 있는 당사자들은 서로 분노와 실망감에 속이 터저 죽을 것 같다. 단 한번이라도 제대로 소통하면 오래된 문제를 정리하여, 희망있는 견실한 내일을 건설할 수 있건만... 도대체 왜? 각자 자신을 지성인으로 내세우건만, 어찌하여 대화 도중에 비난과 격노가 터지고 언어가 불통되는 상황이 반복되는 걸까? 그토록 가깝다고 믿어온 가족 동료 민족이건만 서로 다른 감정과 생각과 가치관을 뿜어대며,..대화 자리가 마치 전쟁터인 양, 불편한 긴강과 서로 이기려 으르렁 대는...황당한 현상들의 심리적 원인은 무엇인가? 대화 불통은 지능의 높고 낮음 때문이 아니라, 대화자들의 개인무의식이 매우 다름에 기인한다. 대화자가 서로 다른 정신구조, 환상(욕망) 유형, '대상 표상'을 지닐 경우, 그것이 관계 속에서 직면되어 상호 인정되지 않는 한 진정한 소통은 좀처럼 이루어지기 어렵다. 가령 (자기애 상태로부터 대상애 단계에로 진입한) 보통사람과 신경증자의 무의식에는 '타자를 향한' (유아적) 성욕동과 성환상이 역동한다. 그로인해 누군가와 문제가 생겼을 때, 대상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을 갖고 대화 하면서 풀고 싶어 한다. 그에게 '대화'는 만족되지 못한 (의식-무의식의) 결핍을 '상징 언어로' 안전하게 대신 채워주는 일종의 승화된 성교다. 반면에, (자기애 단계에 고착된) 성격장애자의 무의식에는 타자로부터의 박해망상과 박해불안이 그득하다. 그로인해 대화하면 자신의 숨겨둔 문제(분열된 자기, 손상된 자존감, 부정적 대상표상...)들이 타인에게 적나라하게 노출되어 공격 수치당할까봐 두려워 형식적(피상적) 대화만 할 뿐이다. '진실된 심층 대화'는 (어떤 이유를 만들어서건 자동) 회피되며, 회피할 목적으로 대화관계 자체를 파괴(격노)하기도 한다. 격노하면 관계가 멀어지거나 깨져, 심층 대화를 하게 될 위험도 긴장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자신의 한계를 직면, 반성' 해야만 비로소 풀릴 수 있는 삶의 문제들에 대해, (자신의 내면을 거울처럼 반영해주는) 타자와의 진솔한 대화 작업이 '정신 구조적으로' 힘든 사람들이 적지 않다. 가령 자기(self)가 깨지거나 침범 박해당하는 불안이 심한 개인은...자신의 망상시나리오를 위태롭게 할 이질적 외부 요소들이 자기 안에 침투되는 걸 못 견딘다. (외부세계와 자신의 관계를 자신에게 필요한 양태로 편집 구성한) 그 망상은 비록 현실과 어긋나 종종 마찰을 일으킬지라도, 그의 '자기'가 현실에서 붕괴되지 않게 현실과의 '끈'을 그럭저럭 유지시켜주는 생명 지지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견딜만한 (심리적) 현실인 그 망상을 위협하는 모든 소리들은 그에게 '독'이며 '악'이다. 그래서 그의 입장과 다른 이질적 의견들은, 그의 정신 속에 각인되기 전에 자동 차단된다. 누군가가 도움 주려고 그의 문제에 접근하면, 타자의 그런 노력과 시도 자체가 그에겐 마치 자기정신을 붕괴시키려드는 잔인한 공격처럼 느껴지기에, 불안과 분노, 격렬한 반발을 일으킨다. ("나는 누구의 도움도 필요없어! 내가 알고 싶은 그 것만 알면 돼! 내게 너무 많은 걸 알려들지도 알려주려고도 하지 마!") 그의 '자기 해체' 불안 이 어느정도인지는 '대화'하는 과정에서 그의 대화태도와 언어양태를 통해 간접적으로 드러난다. 그의 '언어'가 얼마나 이분법적으로 극과 극(선과 악, 모와 도, 흑과 백...)으로 분열되어 있느냐가 일차 징후이다.("당신 말은 무조건 좋아/전부 엉터리야") 자신과 다른 생각과 입장을 통합해내는 자아능력이 부족한 그는, 자신에게 안전하다고 느껴지는 특정 '결론'만 기계처럼 반복할 뿐, 자신과 다른 타자의 언어를 온전히 경청할 수 없다.(듣는 척만 할 뿐이다.) (뜻밖의 자극들이 정신에 침투해 일어나는 자연스런 긴장과 이완의 굴곡을 지닌) 대화의 '과정 자체'를 세세히 '반추'하여 음미하려는 마음이 부족하고, (나쁜 기운과 부정적 언어에 압도될까 공포스러워) 어둡고 부정적인 주제를 회피한다. 특히 '자신의 문제'에 관해서는 극도로 민감해져 직면하기를 격렬히 '부인'한다. 타자의 주장이 자신의 것과 다를 경우, 조화로운 타협이나 주체적인 통합을 이루어내지 못한 채, 자기주장만 녹음기처럼 반복한다. 이런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사회에서 인정받는 위치에 오르지 못하면 '애정 대상'으로부터 영영 관심받지 못할 거라는 '대상의 사랑상실'(거세)불안보다 근원적인, (타자의 의견을 수용하는 순간) 자신의 주체성('自己性')이 타자에게 흡수되어 파괴 소멸될지 모른다는 멸절(자기 無化) 불안이 역동한다. ("세상이 곧 끝장날 것 같고, 아울러 내가 없어질 것 같아 불안해~!") 신경증자는 자아로 통제되지 않는 자신의 '증상'을 이질적 문제꺼리로 느끼며 곤혹스러워하고 시달린다. 발달된 자아를 지님에도 불구하고 의식과 의지로 해결되지 않는 그 증상 때문에 그의 삶은 만족감이 적고 복잡하고 착찹하다. 그는 증상이 유발하는 불편과 불이익 때문에 사회적 관계에서 절반쯤 고립되고 거세된다. 마치 (금지된 '죄'를 저지른 댓가를 치루는 양) 스스로를 처벌하는 묘한 운명의 덫에 갇혀, '생각' 속에서만 끊임없이 새로운 미래를 건설한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신경증자의 정신 한편에선 증상에서 벗어나고자 그것을 일으킨 미지의 원인(진실)에 대한 앎의 욕구가 작동된다. 가령 강박신경증자는 (정서는 분리시킨 채 주로 '생각'만으로 실재를 안전하게 대면하기에) 자신의 내면과 주위 대상들의 곤혹스런 실상을 '인식'하는 것에 대해 그리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식이...억압된 무의식에 근접하면, 방어가 자동작동되어, 앎의 욕구가 줄어들고, 생각은 억압된 그것의 '주위'만 계속 맴돌게 된다.) 그는 자신을 향한 타인의 비판에 대해 그것이 '진실을 건드릴 경우', '부인'하거나 '왜곡'하지 않고 경청하여 나름대로 자기인식과 자기회복에 활용할 수 있다. 또한 보통사람처럼 타인과 자신의 장단점을 두루 살피며, 무엇이 '진실/거짓'인지에 대해 (타자의 관점을 반영한) 반성적 사고능력을 유지한다. 나아가 무의식의 어떤 요인들이 인생을 향유하려는 자신의 시도를 번번히 방해하는지 그 뿌리를 찾아내려 노력한다.(안타깝게도 무의식적 방어작용 때문에, 전문가의 도움이 없는 한 이런 노력이 결실을 맺지는 못한다.) 이런 특성들로 인해 신경증자에겐 무의식의 생각과 감정이 우발적으로 표출되는 '자유연상'과 무의식에 대한 뜻밖의 깨달음을 주는 '정신분석적 대화'가 소중하게 느껴진다. 무의식을 타인(분석가)을 향해 '언어로' 분출하는 활동이 그의 주체성을 해체시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마음의 짐을 덜어내고 방어를 완화하여 자아 기능을 고양하는 긍정적 기능을 한다. 이에 비해 정신증적 불안 강도가 높은 성격장애자는 여러 병리요인들의 최종 형성물인 그의 기형적 성격구조 자체에 대해, 결코 '이질적 증상'으로 지각하지 않고, 자각하지 못한다. 견고한 성격갑옷 속에 갇힌 그는, 자기애적 환상과 망상으로 정신보호막을 꾸려, '현실'을 그럭저럭 견뎌낼 뿐이다.("나는 내가 보고싶은 사실만 선별해서 지각하는 겁먹은 아이가 아니라, 모든 사실을 제대로 알고 있는 지혜로운 분이야. 나는 무시당한 아이가 아니라, 사랑을 넘치도록 듬뿍 받은 귀하신 분이야...") 공포스런 '박해 멸절 불안'을 방어하기 위해 <생존 차원에서> 형성된 자신의 (편집분열적) 성격구조와 망상내용에 대해, 타인이 문제가 '있다/없다, 참이다/허구다' 왈가왈부하는 것 자체가 몹시 불쾌하고 불안해 격노한다. (아랫 사람에게) "야 이 나쁜 불한당 새끼들아. 대체 뭐가 어쨋단 말이야..." ("대화? 갓잖은 니들이 내 상처와 공포를 알어? 진정 감당해낼 수 있어?!") (중요 대상에게) "문제를 지적하는 당신....그래서 어쩌란 말이야...내 마음 속에 뭍혀 있는 걸 기억해내 말로 표현한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어. 어쩌피 난 바뀌지 않을 거고, 세상도 바뀌지 않을텐데... 왜 날 자꾸 힘들게 해..." ("그냥 내게 사랑의 위로와 평안을 줘. 그거면 족해...!") 망상의 에너지로 버티는 성격장애자는 의식의 이면에 '분열'되어 축적된 주체의 근본 문제들에 대해 관심과 대면을 회피하게 된다. 그는 (망각된 어린시절에 형성된) 자신의 문제가 자신모르게 자기자신과 가족과 타인에게 부담과 피해를 주어왔고 (죽을때까지) 계속 문제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결코 알고 싶지 않다. "현실 인식은 불안을 해소해주기는 커녕, 내 가슴을 더 답답하고 찹찹하게 만든단 말이야!" 감당하기 힘든 영아기 불안이 터져 나오면 정신그릇이 깨져 끝장나는데... 알고 모르고가 뭐 그리 대단해! 죽으면 끝인데...! 그냥 이대로 살다가 가면 되잖아! 인생 뭐 별거라고...못믿을 놈들 뿐인 세상이건만...! 양심불안과 거세불안이 과도해 '옳고 그름'을 정확히 판단해야 안심하는 신경증자와, '자기' 멸절(해체, 박해, 유기) 불안 때문에 상대방이 나를 해칠 사람인지 위로하고 보호해줄 사람인지(내 편/적 편)에 과잉 신경쓰는 성격장애자는, 일차적 관심사가 정신구조적으로 서로 다르다. 그로인해 이들이 '대화'를 시도할 경우, 이해 공감받고 싶어 서로를 향해 던져진 말들은 공명되지 못한 채 끊임없이 엇갈리거나 엉뚱한 반응을 일으킨다. ("그토록 머리 터지게 전했건만, 왜 내 말을 도무지 못알아 듣는 거야!~") 결국 보다 발전된 미래를 만들고자 '대화'를 시도하면 할 수록, 서로에게 상처 입히고 각자의 자존감이 손상되어 '관계'가 멀어지는 곤혹스런 악순환이 반복된다. '대화'를 시작하기 위한 심리조건('자기' 상태, 일차적 관심사, 대상표상, 환상, 불안...유형)이 서로 '몹시 다르다'는 사실을 각자 뼈저리게 직면하고 인정하지 않는 한, 친밀하다 믿어온 가족 부부 친구일지라도, '위기'가 생길 경우 '소통'은 일종의 착각일 뿐이다. 신경증자는 양심불안과 거세불안을 가라앉히기 위해 무엇보다 옳음/그름을 분별해야 하며, 이를 위해 사태의 '진/위'를 가능한 한 온전히 알고 싶어한다.("어떻게 대처하는게 거세당하지 않을, 죄책감에서 벗어날 옳은 행동이지? ... 그 분이 나를 사랑한 게 '사실'일까?") 이에비해 부모 '동일시'에 실패하여 초자아가 미숙하고 '자아 정체성'이 모호한 성격장애자는, '사실'을 확인하려드는 신경증자의 언행이 낯설게 느껴지고, 마치 자신을 겨냥한 적대적 심판언어로 들려 불편 불안해진다. 그래 '처리해야할 현실' 문제를 서로 대화해가며 냉철히 분석하려는 마음이 사라지고, 단지 상대에게 '설득' 당하지 않으려 기를 쓰게 된다. 안전하고 따스한 공감이 없는 객관적인 진실/거짓, 옮음/그름 확인은, 그의 심리세계에선 (심리적 생존을 유지하는데) 무가치하고 위험하기에, 관심에서 계속 빗겨간다. 그가 저능아 위선자이기 때문이어서가 아니라, 작은 부정적 자극에도 자주 깨지는 민감한 '자기' 구조와 박해 멸절 불안이 그를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 반복해서 되뇌인다. "인생은 어쩌피 환상이다. 현실은 위험한 요소들로 가득차고... 대화란 ... 음모를 숨긴 속임수일 뿐이다 .. " 깊은 마음 속 진실을 타자와 '대화로 소통'할 수 있다면 그는 이미 어떤 험한 현실과 환상에도 압도당하지 않는 창조적 주체이다.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