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정신의 회복과 고양에 꼭 필요한 '진실'을 행운스레 접할지라도,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드는 일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아무리 귀한 진리일지라도 그것이 '내면의 문제'를 건드릴 경우 철갑방어가 자동 작동되어 '부정'(negation)되기 때문이다. 감당하기 힘든 충격이나 위협적 환경이 계속될 때, 그 상태를 '현실'로 인정하면 암담해 '나'가 소멸될 것 같은 불안이 밀려들 때, 홀연 작동되는 방어가 '부정'이다. '부정'이 일어나면 숨막히고 끔찍하던 환경이 어느순간 뽀샵된 사진처럼 쓱 보기좋게 바뀐다. "으휴, 다행이다. 살만한 세상이네! 난 괜찮아..".............고마운 구원자인 그것. 프로이드는 '부정'을 세 유형으로 분류한다. 가장 강한 그것이 '분열'(splitting,폐제'foreclose)이고, 다음이 '부인'(denial)이고, 다음이 '억압'(repression)이다. 정신 내면에서 작동되는 이 '부정의 유형'에 따라 개인의 정신구조, 임상구조가 결정되며, 일단 형성된 '구조'는 (존재가 뒤집히는 각성 체험이 오래 지속되지 않는 한) 평생 그/녀를 따라다닌다. 정신분석이 누군가에게 어떤 힘을 줄 수 있는 것은, 운명처럼 형성된 이 '구조'에 대해 혹자가 심각한 '고통, 불쾌, 문제'를 느껴 강한 문제제기와 도움을 청하는 경우에 국한된다. 그 도움도 고통과 문제가 그 주체에게 계속 지각되는 동안에만 가능하다. 문제를 문제로 지각하지 못하는 사람의 경우 겉으로는 편안해 보인다. 그러나 '부정에 함입된 정신구조의 부작용' 때문에 닥치는 불행한 사태들에 원인모른채 계속 당황해야 하고, 부정적 요소들이 자손과 가문에 투사 내사되어 대물림(복제)되는 가혹한 기표가 된다. 대체 무엇을 유독 부정하기에 개체의 정신구조와 삶이 그토록 엄청나게 좌우되는 것인가? 감당할 수 없었던 '불편한 정서'와 연관된 그것을 (대상관계론자들은 '어머니의 돌봄 박탈'이라) 프로이드와 라깡은 '아버지의 이름'(말씀, 권위, 위치, 힘)(Name-of-the-Father!) 이라 칭한다. '아버지'란 눈에 보이는 특정 아버지이기보다 유아를 엄마와의 본능적, 의존적, 상상계적, 자아도취적 융합상태에서 '분리'시켜 새로운 현실세계와 주체적으로 관계하게 기능하는, 엄마와 다른 제3의 '상징 대상'을 의미한다. '아버지'는 또한 가정에서 엄마와 소통하면서 엄마가 함부로 할 수 없는 '공공의 힘'을 지닌, 아이를 든든히 지켜주며 본능을 통제하라 규범요구를 하는 상징계의 주인이다. 남녀평등이 정착된 현대 사회에서 생물학적 남성 여성으로서의 아버지 어머니 구분은 정신에 미치는 의미가 약하다. '아이의 눈'에 가정 내에서 모든 의미와 가치와 호칭을 좌우하며 생물학적 아버지보다 월등한 힘을 지닌 듯이 보이는 어떤 대상(어머니)이 '아버지의 위치'와 기능을 계속 독점할 수도 있다. 엄마가 원초적 융합대상인 동시에 융합을 금지하는 대상의 이중역할을 수행하게 되는 이런 경우, '대상'을 동일시하여 정신을 형성해가는 아이의 정신성과 정체성에 혼란이 생긴다. 가정 내에서 그림자 같이 존재감 없는 대상, 말로만 권위를 과시할 뿐 실상은 무능하고 자식에게 의존하는 언행불일치한 대상, 닮고 싶은데 닮고 싶은 점이 도무지 보이지 않는 대상으로서의 생물학적 아버지는 아이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동일시하여 내면에 자리잡게 하는 성공적 모델이 되지 못한다. 어머니의 과잉보호와 편집적이고 자기애적인 자식소유 성향, 아버지의 빈약함, 부모의 불화 등등 여러 요인으로 인해 '아버지의 이름'을 온전히 인정하지 못한 채 '부정'(분열-폐제/부인/억압)한 개인은 의지와무관하게 평생 원인모를 후유증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된다. 분열('폐제')은 원치 않는 어떤 자극이 지각되지 않게 지각 기능 자체를 차단하는 기제다. 이 구조를 지닌 사람은 어떤 무엇을 의미있게 지각하는데 필요한 mental frame이 형성되지 않았기에, 어떤 경험을 하더라도 그것이 내면을 풍성하게 하는 의미로 수용되지 못한다. 그로인해 생물학적 나이를 아무리 먹어도 정신의 새로운 통합과 발달을 경험할 수 없다. 외부경험들은 이미 구조화된 정신에 어떤 새로운 자원도 영향도 미치지 못하는 '무의미'한 자극의 연속일 뿐이다. 아울러 본능을 억제, 지연시키는 상징적 의미체계를 작동시키는 중심기표인 '아버지의 이름'이 부재하기 때문에, 상징계의 복잡한 의미율동들이 내면에서 온전히 작동되지 않는다. 자기애적이고 주관환상적 만족을 제공하는 상상계를 대체할 '상호주관적인 상징계'가 정신내면에 자리잡거나 작동되지 못하기에, 그/녀는 주관상상계에 고립되어 타자와의 상징적 언어소통이 늘 어긋난다.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는 답답하고 지겨운 이세상! 내 마음을 알아줄 수 있는 대상은 그 누구도 없어! " 그/녀는 아이처럼 부분욕동들이 여과없이 불쑥 표출되거나, 현실에서 자신이 보고 싶은 부분만 (편집해서) 지각하는 (편집적) 부분지각을 자동적으로 반복한다. 또한 수많은 대상들과 힘들로 구성된 현실세계로부터 밀려드는 복합자극들과 양가감정들을 전체적으로 균형있게 지각하고 종합적으로 연결해 사고하지 못한다. 그로인해 복합적 코드들을 상징적으로 해석해 반응하는 타인들과의 전인적이고 상징적인 관계가 어렵다. 그/녀의 정신적 판단과 지각엔 (폐제된 '아버지의 이름'처럼) 늘 모든 의미를 삼켜 무화시키는 거대한 '구멍'(블랙홀)이, 타자에로의 '연결'을 차단하는 벽이 있다. 따라서 치열하게 경쟁하면서도 대상의 양가가치를 인정하고 수용하면서 대상과 다중으로 접촉하며 친밀 관계를 맺기도 하는 현실 상황에 적응하기 어렵다. 그로인해 '대리자아' 역할을 기꺼이 감당해줄 마음을 지닌 가족과의 1차적인 대상관계만 간신히 유지할 뿐이다. 소위 정신증으로 분류되는 이 유형의 사람은 타인 관계의 무능으로 소외되며 '사회의 중요 위치'를 욕망하지도 차지하지도 않기에, 집단의 정신성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단지 '폐제'(분열)된 자극들이 그에게 뜻밖의 '환각과 환청으로 회귀'하여 그를 박해하거나 비현실적 명령을 내려, 일상의 질서를 깨뜨리는 원초 행동을 저지르곤 한다. 그로인해 사회로부터 '이질적 대상'으로 비난받기에, 사회 집단을 붕괴시키기 보다 응집시키는데 기여하기도 한다. 문제는 가족이다. 그/녀가 가족에서 부모, 장남, 제주의 '위치'가 되면 '그의 존재와 말'에 영향 받지 않을 수 없는 대상들은 그의 특성들이 정신에 무의식적으로 내사(전염)되어 복제물이 되고 만다. 정신증자는 '아버지의 이름'이 폐제되었기에 '아버지의 위치와 역할'이 뭔지도 모르고 원하지도 않으며 온전히 수행할 수도 없다. 그는 단지 힘있는 대상을 이용해, (유아처럼 유아적) 자기가 원하는 데로 마음껏 욕구를 표출하고 보살핌 받으며 살고 싶을 뿐이다. 그런 결함이 다행스럽게도, 가족 구성원에게 그 대상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분리 독립할 수 있는 약간의 계기를 허용한다. 사회와 주변사람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도 그걸 자각하지 못해 만성적이고 방대한 피해를 일으키는 것은 대부분 '부인'기제가 구조화된 성격장애자이다. 그는 '아버지의 이름' 자체를 몰지각(폐제,분열)한 것이 아니라 일단 지각했던 자이다. 단지 부모와 연관된 어떤 불편한 경험흔적(거세..)를 결코 감당할 수가 없어 그것을 연상시킬 위험성을 지닌 요소들을 고집스레 부정한다. 성격장애자(내지 성도착자)의 근본 문제는 자신의 정신에 ('아버지의 이름'과 연관된) 어떤 불쾌와 분노와 편집적 왜곡이 있으며, 그것을 '부인'했기 때문에 자기자신과 주변대상에게 문제가 계속 생김을 좀처럼 지각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녀의 무의식에선 '아버지의 권위'를 부인하고 사회의 요구나 규범을 불편해하고 하찮게 여긴다. 그러나 의식에선 '아버지의 말씀'처럼 보이는 도덕언어(실은 내사된 '어머니의 말씀'이다!)를 그럴 듯하게 사용한다. 유념할 점은, '부인'된 '그 요소'들이 소멸된 것이 아니라 무의식에 보관되고 '해리상태로 회귀'해, 사고와 행동에 끊임없이 영향 미치며 직간접적으로 표현된다는 것이다. 가령 그는 가정과 사회에서 (자신이 각색해 상상한) '아버지의 위치'(사실은 전능하게 느껴졌던 '어머니의 위치'!)를 차지하고자 시도하면서도, 무심코 '아버지의 이름'(권위와 품위)을 경멸하는 비합리적 행위를 해리상태로 표출하곤 한다. 마치 '전능한 그 분'(최초양육자)의 위치에서 (두려웠거나, 허울 뿐이던) '아버지의 이름'으로 (불쾌했던) 아버지를 조소하는 양... 이들은 이러한 자신의 (부인-해리된) 정신구조 내지 성격구조에 대해 결코 '문제 증상'으로 지각하지 않으며 고통으로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엄마와 융합해 지냈던 '그 쾌락지각'들에 고착되어 자신의 성격특성(증상)'을 주관환상적으로 즐긴다. 이런 상태를 자아심리학에선 '자아 동조'(Ego syntony)라 칭한다. '자아동조'로 인해 타인이 아무리 애써 그/녀의 사고나 행동에 어떤 문제가 있음을 좋은 마음으로 전달해도, '부인'되어 그/녀의 자아는 자기의 병리 상태를 좀처럼 이상하고 이질적으로 느끼지 못한다. 그에게 '증상'(성격장애)은 이물질적 '문제'(problem)라기 보다 불안을 덜어주는 '해결책'(solution)으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 그는 (성도착증자처럼) '증상의 향락'(sinthome)에 빠져 산다. "난 별 일 없이. 취향대로 산다...단 세상이 잡스러워 언짢을 뿐..." '결함'이라는 것은 유한한 '인간' 존재가 운명처럼 지닐 수밖에 없는 것이기에, 그 자체로는 이상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부인'구조를 지닌 자는 자신의 정신이 <'아버지의 이름'을 부인했기에 아버지 세계를 온전히 경험할 수도, 아버지 역할을 온전히 수행할 수도 없는 결함이 있다>는 사실이 외부로 드러나면, (아이 때처럼) 야단맞고 망신당하고 버림받아 모든 쾌락을 상실할지 모른다는 환상과 불안에 극심히 시달린다. 성격장애자는 '편집ㆍ분열적 자리'에 고착된 구조와, 어머니 세계로부터 '분리'되어 아버지 세계로 전환하는 오이디푸스기 초기에서의 '어떤 충격' 때문에 어머니(세계)와 아버지(세계)의 '차이를 부인'한 자다. 그로인해 그에게 내면화된 상징계는 '아버지의 이름'이 중심에 위치하는 공적인(public) 세계이기 보다 어머니 이름과 아버지의 이름이 혼합되어 공사 경계구분이 모호한 세계이다. 심리내적으로 유아기의 전능한 어머니 세계에 거주하는 그/녀는, 낯설게 느껴진 '남녀 성차이, 경쟁적 오이디푸스 상황' 이전 상태에 퇴행해 머물면서, 유아적 분리ㆍ유기ㆍ박해 환상과 불안에 계속 시달린다. 그로인해 어떤 대상이 그/녀에게 (아버지 세계에서의 지혜로운 생활방식과 연관해) 도움주려 다가와도, (힘이 있었지만 애정이 의심됬던 어머니, 힘있는 안정감을 주지 못해 의존할 수 없었던 무가치한 아버지처럼) 타자에 대한 의심과 불안이 일어나 그 도움을 온전히 수용할 수 없다. 내면에서 솟는 파괴욕동과 분노와 불안을 방어하는데 자아에너지가 소모되어 현실에 대한 객관지각과 진실된 관계를 통한 타자동일시 내면화가 어렵기에 자아의 발달 기회는 끊임없이 지연된다. 그/녀는 방어에너지를 적게 소비해도 될 소수의 낯익은 대상들, 안전한 환경에만 반복해서 머물게 된다. 낯선 환경에로 나아가 새로운 경험을 개방적으로 내면화하지 못하기에 자아의 통합 기능이 정지되고, 부분 지각, 연륜으로 축적되지 않는 지적 사고만 비대화되어, 복잡한 지각들의 다발로 구성된 현실에 대한 종합판단과 효율적 대처가 점점 힘들어진다. 그/녀가 현실을 안정적으로 영위하려면, 누군가의 도움, 보조자아, 자신을 위해 봉사해주는 대상이 필요하다. '성격장애'란 어떤 원인들로 인해 유아기의 의존적 융합에서 온전히 분리 독립하지 못한 어떤 상태이다. '증상'이란 극심한 내적 위기와 이에 대처하려는 자아의 방어작용 사이의 타협형성물이기에, 위기와 불안이 나름 진정된 일종의 치유상태이기도 하다. '문제있는 성격'이란 바로 이런 증상의 기능과 의미를 지닌다. 그렇기 때문에 '부인하는 성격'은 증상 이전의 불편했던 과거 위기 사태를 굳이 재대면하고 싶지 않고, 진정으로 대면할 수가 없다. 간신히 이루어낸 치유책(성격장애)조차 소실되어 더 나빠질까봐, 자존감이 훼손되고 '자기'가 깨질까 몹시 공포스럽기 때문이다. 그가 한 가정의 부모 위치, 사회의 높은 위치, 가족의 장손이나 제주 위치에 있을 경우 그를 둘러싼 삶의 사태는 더 복잡해진다. 열린마음으로 외부세상과 정신내면을 두루 대면하고 수용하고 소화해서 독창적인 무엇을 생성해내야 하는데, '부인된 아버지의 이름' 때문에, 그는 결코 스스로 '그 역할'을 온전히 수행해낼 수 없다. 전체의 핵심을 놓치고 자신에게 편한 (부분적) 사실들만 (마치 그것이 전체 진리 인양) 편집 지각하기에, 그가 하는 일에는 늘 뭔가 결함이 있다. 그로인해 큰 실패가 닥쳐, 자신과 주변대상들이 억울한 고통에 시달릴지라도, 그 결함의 '근원'을 결코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 나이가 들어 타인에게 돌봄을 베풀어야만 하는 위치에 다가갈수록, 타인의 돌봄을 계속 받아야하는 (심리적으로 취약한) 자기상황을 차마 '사실로' 인정할 수 없다. '아버지의 세계'에 진정으로 거주하지 못한 채 어머니 환상으로 버텨온 자신의 무능을, 생물학적-사회적 '어른이기에' 더욱 '인정'할 수 없다! (아이 때처럼) 문책 당해 또다시 무시당하는 하찮은 존재로 전락(거세)될 것 같은 불안! 그래 그/녀의 방어기능은 점점 강하게 작동되어, 자신이 타인에게 의존해왔다는 점을 자동 '부인' 망각한다.("나는 아무 문제없이 떳떳하게 잘 살아왔다!")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어떤 능력과 주위환경을 최대한 이용해, 그 사실을 부인하고 회피하는데 삶을 소모한다. 자신으로 인해 주변사람에게 심각한 사태가 발생할지라도, 투사와 합리화 기제를 작동시켜, '남 탓'을 하거나, 복잡한 현실상황을 가장 단순하고 편리하게 금새 정리한다. 이 모든 심리 태도들의 배후엔 '아버지의 이름을 부인'할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수치스럽고 불안한) 과거 실상, 내지 그렇게 될 수밖에 없게 된 (엄마와 연관된) 원초적 융합과 유기불안에 대한 기억을 필사적으로 '부인'하는 활동이 작동한다. 성격장애자의 이런 '부인'은 '자아동조'로 인해 죽을 때까지 좀처럼 지각되거나 바뀌지 않는다. 그/녀가 죽어야 주변 사람들이 그 병리성에서 간신히 구사일생으로 벗어나 '자기 숨'을 쉴 수 있다. 자신의 골치아픈 문제들을 외면한 채 인생을 자기중심적으로 즐기려드는 성격장애자의 이런 자아동조성 배후에 숨겨진 심각한 병리적 독성은, 그 자신이 아닌 주변 대상에게로 투사되어, 주변대상의 심신을 망친다. 주변대상이 다 붕괴되어 더 이상 의존할 대상이 단 한 대상조차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 되야, 비로소 '잠시' 뭔가 이상함을 느낄 뿐이다. 성격장애는 특정 상처로 인한 자아기능의 일부 저하가 아닌 '부인'과 연관된 정신'구조적 결함'에 기인하기 때문에 약물로 치료되기 어렵고, 정신분석으로도 성공적 치료가 간단치 않다. 정신의 뼈대인 정신 '구조의 변환'이 가능하려면, 무엇보다도 자신의 정신에 어떤 결함이 있음을, 스스로의 힘으로 직면하고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자기 성격이 스스로에게 불편하게 느껴져야 한다! 그 불편함은 열등하고 불길한 징표가 아니라,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지각할 수 있는 자아능력을 지닌 인간이라는 징표이다, 아울러 의지와 무관하게 유년기와 사춘기에 운명처럼 구조화된 자신의 특정 정신성을, 운명과 대결하여 주체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는 귀한 기회가 자신에게 주어졌다는 신호이다. 금지된 소망과 그것에 대해 징벌당하는 불안 사이의 갈등에 시달리는 신경증자는, 자기 내부에 좀처럼 정리되지 않는 어떤 무엇이 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그것을 '억압'한다. 그가 억압하는 '그것'은 주로 오이디푸스기의 욕구들, 거세와 연관된 표상들이다. '억압'은 예기치않은 순간 솟구쳐 자아를 놀라게 하는 '억압된 것의 회귀'에 반복해서 시달리게 한다. 그 시달림에 능력껏 대처한 타협형성물이 신경증 증상이다. 그 증상으로 인한 불편감과 고통은 결코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그 '증상을 매체로' 내부의 여러 긴장들 요구들이 상당부분 '분출(해소)'되는 이점 때문에, 증상은 특별한 동기가 주어지지 않는 한 좀처럼 소멸되지 않는다. 가령, 자동화된 증상적 분출(긴장해소) 통로를 바꾸려면, 더 강한 새로운 만족을 얻고픈 욕구와 힘이 무의식과 의식에서 활성화되어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그는 무의식과 소통하게 해주는 누군가의 도움이 주어진다면 의지를 희롱하는 듯한 '억압된 그것'을 뿌리까지 끝까지 파헤처, 알고 싶은 욕구, 무의식과 대결해 주체성을 실현하고픈 욕구, Ego strength 를 갖고 있다. 단지 억압된 무의식의 힘이 너무도 대단하여, 자아가 그것에 대한 방어에 '일부 실패'해 종종 불안에 시달린다. '아버지의 이름'을 '폐제, 부인'하지 않고 내면화했기에, 신경증자는 일단 '아버지의 이름'이 작동하는 상징계 내부에 위치하며, 외부세계를 왜곡없이 지각하며, 타자와의 상징적 의사소통을 무리없이 행한다. 신경증자의 자아는 자신의 증상에 대해 이질감을 느끼고 불편함과 고통을 느낀다. 아울러 증상을 일으키는 자기 내면에 뭔가 문제가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는 마치 자신에게 어떤 대단한 잘못과 책임, 수치스런 사실이 있기 때문에 고통증상에 빠진 것인 양 자신을 과도하게 책망하며, 자신의 쾌락과 성공을 교묘하게 망치고 자기처벌하듯 소모적 인생을 산다. 금지된 소망 때문에 초자아 징벌과 억압 방어가 작동되어 쾌락을 느낄 수 없는 삶. 큰 성공을 이루고 싶지만 성공을 끊임없이 지연시키는 삶. 욕망의 불씨(유아성욕)가 내면에서 끊임없이 일어나지만, 불안 때문에 쾌락을 향유하지 못하는 죽은 듯한 삶. 타인을 버리기보다 버림받는 게 덜 불안한 삶. 내밀한 소망, 상처, 환상, 죽음욕동, 초자아 불안이 내면에서 솟구처, 자아가 끊임없이 갈등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삶...신경증자는 이런 반복 강박의 굴레에 갇혀 인생을 낭비하듯이 흘려보낸다. "언젠가는 내 소망이 이루어지는 그 날이 오겠지...! 그 날을 맛보기 전까진 나는 계속 살아 있을거야!" 지극한 향락욕구와 지독한 '향락금지' 명령 사이에서, 갈등을 해결하지 못한 채 '진짜 삶'을 끊임없이 미래로 미래로 '유예'하는 신경증자. 그에게 불안 없이 허락된 것은 '생각'의 자유와 소소한 일상의 소비일 뿐이다. '정신분석'이 운명적 인연으로 관계하는 주요 대상은 바로 이 신경증자이다. 그 근본 이유는 그들이 자신의 증상과 증상의 원인들에 대해 대면하는 '자아 이질' 태도 때문이다. 자아이질과 자아동조의 차이는 무엇인가? 그것은 주체적인 자기반성이 가능한 존재이냐, 불가능한 존재이냐의 차이다. 좀더 심하게 표현하면, 인간이냐 동물이냐, 성인이냐 아이냐, 문명인이냐 원시인이냐의 차이다. 지금까지 인간사회는 고통 없는 얼굴을 하는 사람을 마치 완전한 존재인 양 포장해왔다. 위대한 존재는 늘 얼굴에 환한 미소와 광채가 그득해야 한다. 어떤 고뇌도 다 해결한 완벽한 자유인이어야 한다. 우리가 모시는 '신'-영웅들은 결과적으로 삶의 모든 문제를 해결한 완벽한 정신성을 지닌 존재다. 우리가 존경하고 믿고 따르고 동일시되고픈 '그 분'은 상처, 갈등, 불안, 금지된 욕망, 거세, 어떤 정신적 결함도 없는 분이어야 한다. 부처님, 예수님...이 그런 분이시고...민족의 시조이신 단군님...교주님들도 그런 분이시고... 이런 마음은 곧 대상들을 '전적으로 좋은 대상/전적으로 나쁜 대상' '완벽한 이상적 대상/형편없는 쓰레기'로 편집분열시켜 보던 '원시인'의 마음, 유아의 마음, 유아적 돌봄을 갈망하는 광신도의 마음이다. 그리고 내면의 결함과 불안을 직면할 힘이 없어 폐제, 분열, 부인한 문제들을 '자아동조'시키고, 설령 어떤 문제가 있다면 '이상적 외부대상'의 도움으로 금새 해결될 것으로 믿는 성격장애자의 마음이다. 좋은 것들만 지각하고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땐 좋은 예기만 하고 웃으며 지내려만 드는 '부인'의 달인! 현실(자기자신)의 문제들을 객관적으로 성찰해 대처하는 계획이나 의논을 할 수 없는 주관환상 속에 거주하는 성격장애자. 어떤 '충격에 파열되어 구멍난 방어막이 불완전하게 덮개 씌어진 정신'은 외부에서 낯설고 강한 자극이 밀려들 때마다, 덮개가 들썩들썩해 불안해진다. 그러나 그가 일단 그 상태를 있는 그대로 직면하고 인정하면, 비로소 새로운 기운들이 보충되어 경탄스런 주체로 발달할 수 있는 모종의 길이 열리게 된다. 그러나 '그것'을 '부정'하거나, 자신이 부정한다는 사실조차 지우는 방어작용이 성격구조화 되면, 불편감을 주는 모든 자료들을 자동 망각하는 상태가 자연스러움(정상)으로 느껴지게 된다. 자신에게 심각한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지각하는 불편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기와 외부대상이 끊임없이 환상으로 각색되는 상태. 이것이 '부정'과 연관된 '자아 동조'다. 감히 대항할 마음도 먹지 못하게 암암리에 에워싸 마취시키는 친숙한 환경('그 분'! 상징계)의 힘처럼... "자아 동조"의 힘은 참 대단하다. 인생을 환상에 묻혀 속게 만드는 '자아 동조'의 놀라운 위력은, 자신이 '장점'이라 여기는 중심 성격 속에 뜻밖의 진실이 숨어있음을 발견하는 그 때에 비로소 자각된다. (유난히 흠 없다고 지각되는 '그 곳'이 이미 고도로 위장된 결함들이 숨어있기에 최적의 장소다.) "어 이 럴 수가!... 내가 가장 자연스럽고 자부심 있게 느껴 자랑해온 그 성격이, 그토록 부정해온 '그것'에 대한 경직된 반응이었다니...!"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