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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내면과 성격유형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건 싸울 때다. 편집형 자기애성격자는 엄청난 공격성을 퍼부어 상대를 파괴하고도 조금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다. 타인을 향한 진정한 관심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경계선성격자는 격노를 분출하고는 전체상황을 감당할 수가 없고 보복당할까봐 불안해 곧 모든 관계에서 '철수'하며, 신경증자는 '억압' 때문에 속마음을 온전히 표현하지 못한 아쉬움과 후회감에 젖는다. '인간'이라는 보편 개념은....개개인이 얼마나 다른 존재인지를 망각하게 한다. 사람의 품성은 천차만별이다. 자신이 '대단한 존재'임을 끊임없이 확인받고 싶어 타자를 자신의 존재위상을 높이는데 끊임없이 이용하려 드는 자기애성격자도 있고, 능력있어 보이는 자들을 '이겨먹고' 싶어하며 끊임없이 조종하려 드는 반사회성 성격자도 있고, 힘있는 존재에게 순응하고 융합해 안정감을 확보하려드는 경계선자도 있고, 사회적 경쟁에서 성공해 거세된 패배자가 아님을 확인받고 싶으면서도 사회적 요구들에 반발하는 양가감정과 갈등 때문에 보람도 향락도 누리지 못하는 신경증자도 있다. 싸울 때, 이 모든 무의식의 특성들이 한꺼번에 돌출되고 뜻밖의 인생 파노라마들이 생성된다. 싸움의 결과는 각양각색이다. 보통의 건강한 사람은 '싸움'을 통해 막혀있던 답답한 관계를 뚫고 전진해 더 깊은 마음 교류를 모색한다. 그러나 '자존감'이 약해 타인이 자신에게 친밀히 다가오는 걸 두려워하는 자기애성격자나, 부정적인 상황이 주는 긴장을 오래 버티질 못하는 경계선성격자의 싸움 결과는 항상 파국적이다. 성격장애자들은 싸울 때마다 자신의 (은폐된) 문제를 더 진하게 반복하며, 인격의 변화를 일으킬만한 요소들에 강력히 저항한다. 성격장애자는 보통 때도 진정한 대화를 못하고, 싸울 때도 소통을 못한다. 자신 속의 부정적 문제들을 '직면'하는 것이 너무도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워 '분열, 투사, 부인'하는 원초 방어기제가 자동 작동되기에, 자신의 부정적인 특성을 지적하는 타자의 음성은 일종의 '적대적 공격, 침범'으로만 느낄 뿐이다. 타인의 말을 진정으로 수용하질 못하기에, 싸울 수록, 말을 뱉고 섞을수록 인간관계는 더 꼬이고 파국적이 된다. '대화'를 운운하며 그의 입에서 (투사되듯) 뿜어진 말들은 진정한 관계를 파괴-회피하기 위한 것이기에, 소통하려 마음을 여는 타인들의 정신을 깨뜨리고 자신의 병리상태를 오염시킨다. 결국 성격장애자를 변화시킬 수 있는 일상의 통로는 거의 없다. 변화를 거부하며 유아적 불안과 분노와 시기심을 '분열'시켜 투사하거나 강박적으로 유지하는 정신성이 이미 '구조화'되었기에, 이들의 의식은 이미 자신의 문제를 더이상 문제로 자각할 수가 없어, 타인과의 진정한 대화나 인격 개선은 좀처럼 가능하지 않다. 단지 그가 위치한 사회적 관계 속에서 대화 하는 '듯하게 보이는' (as-if) 행태만 반복될 뿐이다. 성격장애자의 꽉막힌 '가짜 인격'을 일상에서 개선시키려면...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어야 한다. 자기애성격자는 타인의 생명에너지를 자신을 위해 쓰도록 교묘하게 이용하고 착취한다. 타자가 자신의 말을 잘 들으면, 그 대상의 가치를 인정하고 그 가치만큼 대우해준다. 그러나 자신의 말을 거부하면 그 순간 그 대상의 존재가치는 쓰레기 내지 없음 상태가 된다. (무의식을 모르는) 보통의 사람들이 어떤 권력을 지닌 자기애자의 이런 특성을 막연히 직감하고, 그에게 잘 보이려 드는 순간, 그(녀)는 그때부터 자기애자의 기분을 맞추는 노예로 평생을 살아가야 한다. 힘있는 자기애성격자와 궁합이 잘 맞는 성격유형이 힘있는 대상과의 융합을 갈망하는 경계선성격자다. 경계선자가 자신에게 충성을 다 하는 한, 자기애자는 대상의 존재가치를 인정해주고 보호해주고 북돋아주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관계를 십수년 맺어도...그 관계는 한 순간에 날아가는 덧없는 가짜관계일 뿐이다. 각자의 환상에 의해 맺어진 부분적 대상 관계일 뿐이기에, 상대방의 부정적 특성이 뜻밖에 갑자기 부각되는 그 순간, 평시엔 그토록 잘 맞는 것 처럼 보이던 관계는 '싸움'이 벌어지며 최악의 관계로 돌변한다. 분열된 내면의 All Good 투사가 All Bad 투사로 변해, 존경스레 보이던 교주님, 대표님, 선생님이.....개자식이 된다. 그(녀)가 겪었던 '분열'된 유아기 심리상태와 대상관계 패턴이 그대~로 재연되는 것이다. 진정한 소통이 없이 (유아적, 병리적) 환상으로 맺어진 관계이기에, 전체적(전인적) 교류가 아닌 심리적 결핍에 의해 편집된 분열된 부분대상(good object/bad object) 관계이기에, 이들의 함께 만나 웃고 떠들며 나누는 시간은, 인격의 발달(통합)이나 인간성의 고양에 어떤 긍정적 기능도 하지 않는다. 그래 진정으로 '자기 삶'을 찾고 싶은 사람은, 반복되는 인생 낭비적인 그 관계를 깨고 나와야 한다. 무의식이 온전히 숨쉬기 위해, 참자기(개성)을 느끼기 위해...어린시절의 '상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성격장애자와의 관계는 결단을 가지고 청산하는게 유익하다. '싸움'의 진정한 가치는 바로 이것에 있다. 더이상 거짓관계를 하면 자기존재가 숨막혀 죽을 것 같을 때 일어나는 '진정한 자기 표현'으로서의 싸움. 그동안 참아왔던 속상함이 과도 축적되어 자기-자아가 붕괴될 지 모른다는 불안이 일어나, 순간적으로 터지는 무의식의 표출! "숨막히는 고통을 겪고서도 대상에게 버림받고 박해당할까봐 두려워 나를 온전히 표현하지 못했던 어린시절 상황을 또다시 반복하다간, '내'가 영영 없어질지도 몰라~!" 그런데 이 싸움이 각자의 인격발달에 긍정적 기능을 하려면, 무의식의 일방적 분출이 아닌, 불쾌와 불안을 감당하면서 자신의 한계와 문제를 직면하고 자신과 다른 상대의 입장과 장단점을 두루 수용하며 꾸준히 소통하는 과정을 견 뎌 내 야 한다. 이런 과정은 내부-외부의 방해요인들 때문에 결코 쉽지도 간단치도 않다. 프로이드학파의 대표적 정신분석가인 Ralph Greenson은 '정신분석 과정'에서 분석가와 내담자 사이에 힘든 싸움이 일어나는 '부정적 전이' 과정을 거치지 않은 원만한 정신분석 관계는 결코 내담자의 정신성을 진정으로 변화시켰다 볼 수 없음을 강조한다. 분석가는 자신을 향한 내담자의 긍정적인 전이를 한동안 유지시키려 노력하다가 적절한 때가 되면 반드시 자신을 향해 부정적 감정을 표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긍정적인 분석 관계를 오래 유지해온 내담자에게, 정신의 바닥에 분열되고 억압된 독한 감정들을 분석가를 향해 한껏 퍼부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분석가가 정직함과 인간애와 버틸 힘을 지닌 만큼만 할 수 있는 능력이다. 무척 힘들고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내담자의 무의식적 격노가 표출되는 그 싸움 순간은 단순히 '의식에 의해 계산된 형식적 기법 과정'이 아니라, 서로 다른 두 개인의 무의식이 치열히 부딪히는 숨막히고 불안정한 실존 상태다. 수십년간 묻혀온 파괴욕동과 독기들이 일시에 속에서 튀어나와 분석가를 향해 덮칠 때, 분석가의 정신성은 엉망이 되고 엄청난 몸살을 앓게 된다. 그 섬뜩한 순간, 그 순간이 바로 내담자의 '막힌 숨'을 트이게해 수년간 지속되어온 비일상적이고 다채로운 정신분석 경험 과정들이 열매를 맺게 하는 가장 섬세하고 귀중한 순간이다! 무의식에 숨어있다 비로소 정체를 노출하는 내담자의 '진짜 주인'을 대면하는 그 순간, 무의식에 분열되어 있던 무시무시한 파괴성과 시기심과 탐욕과 수치감과 열등감...이 한꺼번에 분석가의 정신 깊숙히 침투한다. 좋은 걸 모두 혼자 지닌 채 아기에게 온전히 주지않고 그로인한 고통의 몸짓조차 외면하던 자기애적 엄마에게 향했어야 할 분노들이....오랜 정신분석 관계를 거친 그제서야....예기치않게 분출되는 것이다. 어릴 적 엄마가 감당해주었어야할 그 온갖 부정적 감정들이 부모를 대리하는 분석가를 향해...무의식적으로 쏟아지면, 분석가는 무기력해지고 숨이 막혀 말이 막히게 된다. 정신의 균형이 깨진 채 불안감 수치감과 위압감에 당황하고...빨리 이 지옥같은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진다. 그런데 분석가는 그 상황을 거부할 수 없다. 아니 거부해선 안된다. 거부하거나 회피한다면, 내담자의 고통을 체감하고 담아주고 버텨주는 '진정한 관계'를 맺지 못해 수년의 정신분석 과정이 도로아미타불이 되거나, 미지근하게 끝나거나, 편리하고 두리뭉실하게 정리되고 만다. 그래 분석가는 싸움 상황에서 오한이 나고 죽도록 힘들고 자존심이 상하고 눈물이 나도 결연히 버텨며, 끝까지 싸워가며, 이 상태가 기억도 나지않는 시절 내담자가 견딜수없어 분열(마비)시켰던 바로 그 참담한 심정임을 '거울'비추듯 상처주지않고 생생히 되돌려 주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유아적 공포가 소산되고 봉쇄되었던 얼음성의 마법기운이 풀려 정신에 생명의 온기가 돌게 된다. 자신의 진면목을 접촉하면서 이젠 '제대로 살아보고 싶은' 주체적 욕구가 파릇 피어난 것이다. '정신의 싸움'은 정신분석가조차 예측하기 어렵고 감당하기 힘든 것이기에, 분석상황에서조차 뜻밖의 나쁜 결과들이 종종 발생한다. 분석가가 힘이 버거워 내담자를 내치기도 하고, 내담자가 분석가에 실망하여 관계를 깨뜨리기도 한다. '싸움'이란 이토록 의식이 통제하기 힘든 무엇이며, 무의식의 힘에 의해 진행되는 무엇이기에, '좋은 싸움'은 그만큼 희소하고 귀하다. 현실에서 우리는 어떤 싸움을 하는가? 정신분석 임상상황과 현실의 싸움은 어떻게 다른가? 보통의 현실 싸움은 자기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욕심과 치열한 경쟁상황에서 일어난다. 싸울 때 각자는 '도덕언어'들을 동원해 '진리, 진실'의 이름으로 상대방의 약점만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고 쓰레기로 만들며, 자신을 고상하게 미화한다. '대화'는 말 뿐이고, 속마음은 그대로다. 사춘기가 지나면 개인의 성격은 이미 굳어져서 특별한 경험을 하지 않는한 좀처럼 변화되지 않는다. 싸움은 그 개인이 지녀온 성격의 속살을 적나라하게 노출시켜 상대로 하여금 생생히 확인케 하는 장면이 된다. "결국 겉만 번지르르했던, 그렇고 그런 년놈이었군! 더럽다 퇘!" 진정한 마음 소통은, 가족과 한두 친구와만 가능한 것인가?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싸움'을 통해 마음이 더 깊이 소통하여 인격의 발달을 이룩하는 '귀중한 경험'은 존재할 수 없는 것인가? 그런걸 기대하는 사람은 아직 세상 현실을 잘 모르는, 순진하고 어리석은 인간일 뿐인가? 세상은 자신의 문제를 온전히 자각할 수 없는, 진정한 대화나 좋은 싸움이 불가능한 성격장애자들의 판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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