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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한 인간은 외부세계와 내부 무의식계로부터 자극을 끊임없이 받을 수밖에 없다. 좋은 자극만 받고 살 수 있다면 인생은 얼핏 낙원이다. 그러나 그 낙원행복엔 반드시 역기능이 있다. 쾌락이 연속되면 좋은자극도 더이상 쾌락으로 느껴지지 않으며, 사고의 절실함이 사라져 현실인식력과 고급 정신성이 희미해진다. 이것이 인생의 묘한 아이러니다. - 좋음(행복)은 나쁨(상처, 재난...)이 있기에 비로소 좋음으로 귀히 느껴질 수 있는 것이다. 살아가면서 누군가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진정으로 왜곡없이 공감받게 되면, (외로움, 억울함이...이 덜어지기에) 그는 결코 깊은 불행에 빠지지 않는다. 누군가로부터 진정 이해받는다는 느낌이 들면 그는 비로소 자신의 상처와 '한'을 왜곡(방어) 없이 성찰-통합하여 고유의 개성을 발달시키고픈 욕망을 갖게 된다. 그러나 진정한 의사소통이 단절된다면 마음 속 상처와 결핍은 지속되고, 타자를 못믿고 눈치 살피게 된다. 속마음을 드러냈다가 이해받지 못하거나 비난당하면, 자존감이 위축되어 세상과 단절하거나 전정한 자기를 포기한 채 거짓자기로 살게 된다. " 세상이 원래 그런 것이었건만... 어리석게도 사람을 믿고 내 마음을 열다니..." 속을 드러냈다가 망신, 피해당하는 환경에선 개인들 사이의 진정한 대화란 불가능하다. 우리나라 문화는 전세계 어디보다 타자에 대한 비교의식과 평가욕구가 심하다. 그래 끊임없이 타인을 관찰하고, 시기하여 폄하하는 소문을 만들고, 그것에 영향받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주체적으로 선택해 사는 사람은 참 드물다.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알지 못하게 어려서부터 '(힘있는자, 대타자) 눈치보는 문화'에 길들여진 것이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안 되게끔 자신모르게 무엇(누구)에게 어떤 공포스럽고 섬뜩한 상처를 입은 것이다. 누군가의 속마음을 진실로 청취하는데는 때로 깊은 정신분석학, 철학 지식들이 필요하지 않다. 나이나 사회적 연륜도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핵심은 그 사람이 얼마나 자기자신과 타인에 대해 열린마음을 가질 수 있느냐에 있다. 자기 아닌 외부대상에게 진정한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자신의 자기애적 환상관점이 아니라, 상대방의 고통과 기쁨 모두를 상대방의 입장에서 청취한다는 것은...진정한 애정의 징표일 수 있다. 프로이드는 말한다. "자기('나')에게 관심갖고 애착하는 상태로부터 '타자'를 향한 사랑으로 욕동의 방향을 전환할 수 있었다는 것은 인류의 정신발달사에 일어난 참으로 희귀하고 신비로운 사건이다!" 대학강단 생활 20년 중 10년간 나는 '타인을 향해' 윤리학을 가르쳤다. 그러다 어느순간 '살기 위해' 윤리 강의를 일시에 내려놓았다. 타인을 향해 던진 윤리언어들이 모두 자신에게 돌아와 영혼을 고결하게 만든 동시에 고성능 철갑으로 옥죄어, 삶욕동이 시들고 유치해지고 정신균형을 깨뜨렸기 때문이다. 파편화되는 정신조각들을 하나로 응집하고 본능을 넘어선 고급실존을 실현케하는 도덕능력은, 성숙한 도덕적 사고와 그것에 부응하는 정서적 감동이 현실에서 '체험으로 결합'되어야 비로소 형성된다. 진정한 도덕목소리는 불안하고 힘들 때 아낌없이 돌봄 주던 (유년기, 사춘기..) '대상'과의 감동적 정서체험이 있어야 그것이 도덕적 사고(상징언어)와 결합되어 내면의 '구조'로 지속된다. 정서적 감동이 결여된 관습적 환경에서 오랜기간 과도하게 도덕적 사고를 하거나 윤리언어를 자주 사용하게 되면, 자신모르게 현실과 격리된 관념세계에 갇히게 된다. 이 점에서 도덕지식은 도덕능력과 차원이 다르다. 실망스런 현실에서 그 현실의 문제와 차분하게 대면-대결하여 통합해내는 과정을 '실천'하기 보다, 타인을 향해 고상한 윤리언어를 반복해 던지는 것은, 자신과 타인의 정신성을 고양하기 보다, 관념과 실재, 의식과 무의식, 자아와 본능욕동 사이의 '괴리와 불균형'을 심화시키는 '독'으로 작용한다. 타인을 향한 (또는 자신의 내면을 향한) 심층 대화의 단절은 주로 (자기애적, 편집적 성격장애자가) 윤리언어로 자신을 치장(방어)하고, '타인을 향해' '도덕적 심판' 언어를 날리는 그 장면에서 생생히 확인된다. 윤리언어는 (무의식의 증오와 불안을 솟구치게하는) 대상들을 향한 공격적 투사, 시기와 회복, 죄책감과 관용, 이상화와 자기과시에 자주 병행되며, 듣는 사람들은 '말하는 자'의 내면세계보다 그가 내뿜는 카리스마와 입에서 나오는 고상한 언어에 매료된다. "아 말씀이 참 든든하구나 나도 저런 힘을 갖고 싶다..." '아버지(대타자)의 말씀' 기표인 윤리도덕은 무의식에서 과거시절 자신(아이)의 곤경과 (엄마와의 융합/'분리') 갈등을 힘있게 해결해준 '구원대상'(아버지, 대타자)과 연결되어 있다. 그로인해 '인간'은 누구나 곤경에 처할 때 '도덕'과 연관해 '도덕의 이름'으로 자신의 '고뇌와 바램'을 토로하게 된다. "연약했던 어린시절 전지전능하게 느껴졌던 아버지가 혼란스러워하던 나를 바로잡아 인도해 주었듯이, 지금 이 혼잡스런 세상 앞에 (내 존재의 근원인)'아버지의 이름'을 걸고 엄숙히 말하노니....부디 이 말을 경청하시어..." 도덕은 인간이 '사회적 타자'를 향해 자신의 존재가치를 걸고 심경을 표현하는 얼굴이자 자기정신성의 골격이다. 도덕은 유년기 말엽에 아동이 동일시한 대상(부모, 상징계)으로부터 아동 정신에 내면화되어 정신구조를 초본능적인 '질'과 방향으로 재구성하는 평생의 든든한 '경계'이자 '내적실재'(양심, 초자아)다. 그런데 문제는 시대마다 당대인의 정신양태(수준)에 따라 요구되는 '경계 규범' 양태가 다르며, '초자아, 내적 실재'의 도덕명령 특성이 상당히 다르다는 데 있다. 즉 '도덕 자체'와 도덕을 관념으로 이해하고 실행하는 '정신성' 각각에, 의식이 모르는 무의식적 요소들이 참 많다. 이 무의식적 요소들을 충분히 숙지하지 못한 자들이, '윤리 도덕'을 의식의 언어로 과대하게 운운하게 되면, 그것을 타인을 향해 권위로 강요하게 되면....마치 '도덕 자체'가 현실 삶을 공감하지 못한 채 침범하고 박해하고 기만하는 족쇄나 굴레나 허구로 의심될 수 있다. 도덕과 연관해 파생되는 현실 문제들 대부분은 '인간을 안전히 보호하고 정신성을 고양시키는 도덕의 본질자체'가 아니라 '도덕의 이름'을 부당하고 부적절하게 사용하는 개인들에게 있다. 즉 '어떤 정신유형의 인간'이 도덕을 '얼마나 자기중심적으로' 사용하느냐에 있다. 보통의 '성숙한 사람/신경증자/자기애성격장애자'가 도덕을 이해하고 사용하는 방식은 매우 다르다. 현실지각을 왜곡하고 타인에게 피해 끼치는 특성이 이미 성격구조화(자아동질화)되어, 자신의 증상에 대해 이질감이나 문제성을 자각하지 못하는 성격장애자는 도덕언어를 자신의 욕구와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임시적이고 자기애적인 수단매체로 사용한다. 가령, (진정한 관계능력이 부재하지만 사회적 활동은 꽤 활발한) 반사회성 성격장애자는 진실로 '의사소통'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오직 '남을 이겨먹고 조종하며 자기 힘을 과시하기' 위한 도구로 도덕언어를 이용한다. 견고한 자기방어와 무자비한 타인공격에 사용되는 편집형-반사회성 성격자들의 도덕언어는 힘차고 거창하며 이분법적(양극적)이다.("하나님과 '진리의 이름'으로 이웃과 인류를 위한 사랑과 정의는 반드시 실현해야만 한다. 그대가 진정 쓰레기가 아닌 '인간'이라면..") 그런데 정작 그(녀)의 내면에서 도덕은 '아이를 통제할 때만 도덕언어를 썻던, 무섭고 이기적이고 변덕스럽던 부모처럼, 힘을 주지 못했던 무능하고 무감동한 아버지 말처럼' 진정한 신뢰대상이 아니다. 그래서 그(녀) 자신은 도덕에 대해 별 책임의식도 관심도 죄책감도 느끼지 않으며, 부모를 조롱하며 화풀이 하듯 도덕('부모의 말')을 하찮게 진정성 없이 제편리대로 사용하는 것이다. 그 경우 성격장애자의 필요와 심리상태에 따라 오락가락 바뀌는 도덕언어는 (마치 그의 '분열'된 내면세계처럼 그의 말을 듣는) 타인에게 심각한 혼란을 전염시키는 독으로 변질된다. (성격장애자와 달리) 신경증자에게 도덕은 좀처럼 벗어날 수 없는 심리구조적 위력을 지니며 '자아 이상'이자 '자기처벌' 수단으로 작동된다. 신경증자는 도덕적 규범일반과 세상('아버지')의 요구들에 대해 존중하는 동시에 경멸하고 저항하는 양가적 마음(갈등)을 지닌다. 그리고 도덕(아버지)의 권위를 무시하려는 자신의 무의식적 욕망에 대해 가혹한 (내부-외부적) 처벌이 내려질 것이 두려워 스스로에게 과도한 도덕적 심판을 내린다. 그 결과 도덕금기를 마음껏 일탈해 향락을 즐기고픈 욕구가 강렬하지만 이를 강력히 억압한 채, 마치 수도자같은 금욕적-도덕적 삶을 삶으로써 '최후의 심판(죽음, 거세)' 처벌을 모면하려 든다. 평생동안 내면에서 '금지된 향락'을 소망하며 준엄한 도덕 심판관에 시달리는 자...죄인아닌 죄인... 세상을 우습게 여기면서도 타인의 말과 시선에 과민하게 신경쓰는 나르시스트...반복강박의 모호한 안개 굴레에 갇혀....지극한 쾌락의 실현을 끊임없이 '지연'시키며 (불안과 고통에서 일시에 벗어날) 죽음의 순간을 막연히 기다리는 자가 바로 신경증자다. 보통의 성숙인이란 도덕의 진정한 권위와 '도덕의 이름을 쓴 본능들의 음흉한 목소리'를 분별할 줄 아는 존재다. 아버지의 따스하고 엄격한 말씀과 권위를 어린 시절에 나름대로 인정하고 내면화했기에, 부모 말씀의 진정성과 답답함 사이의 갈등을 회피하지 않고 꾸준히 스스로 감당해왔기에, 도덕언어의 양면성을 하나로 통합해 함께 음미할 줄 아는 것이다. 성숙인은 (성격장애자처럼) 도덕언어로 타인을 기만하고 공격하기 보다 소외된 타인에게 힘을 보충해주며, (신경증자처럼) 내면의 도덕 목소리에 지배당해 '자기처벌'하기 보다 (성인이된 자식이 신뢰하는 아버지를 대하듯) 당당히 대면하고 평등하게 소통하여 자기개발의 계기로 삼는다. 보통의 인간에게도 출생순간부터 성장 과정에서 결핍되고 각인된 다양한 종류의 욕구와 상처들이 있다. 이 결핍과 상처는 타자와의 전인적 소통 체험 속에서야 적절한 수준으로 보충, 정화, 해소된다. 도덕언어와 도덕행위는 안정되고 이상적인 '대상'과 삶의 '경계, 방향안내'를 절실히 필요로하는 위축되고 혼돈스런 과도기적 상황에서 그 진정한 가치가 체험되고 내면화된다. 그런데 의식언어의 대표상징인 도덕언어를 '일상에서' 과도하게 쓰게되면 자기자신과 타인의 무의식에 대한 '진정한 청취, 소통' 능력이 단절된다. 의식/무의식, 좋은대상/나쁜대상, 선/악...사이의 그 양극적(이분법적, 비통합적) 분열상태와 소통불능을 망각하거나 숨기기에 가장 안전한 기호가 또한 (분명한 방향성을 제시하는) 도덕언어이기 때문이다. 타인을 믿기 힘들어 친밀관계가 두려울 때 보편규칙 속에 자신을 숨겨주며, 적절한 거리에서 고상히 관계하는 양 할 수 있게 하며, 사랑 없는 전쟁 같은 세상에서 불안을 망각(마취)시키는 보호막이자 (관념적) 위로와 희망의 등불인 도덕(언어)! 타인의 정신발달을 위해 진정 도움을 주려면, 무의식과 깊이 소통하려면, 도덕언어 없이 실존의 정서와 질감들을 다채롭고 솔직하게 전할 줄 알아야 한다. 자기자신의 견고한 방어막을 뚫고서라도 '무의식의 진실'을 대면하고픈 자라면 더더욱....타인의 (비)도덕적 평가시선(경계)에서 쑥 한 걸음 나아가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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